
최영림(1916~1985)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산업화 시기까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한 화가입니다. 그는 일본 유학과 파리 체류, 국내 활동을 거치며 동서양의 조형언어를 흡수했고, 그 속에서 한국만의 독자적 회화 스타일을 구축한 예술가였습니다. 특히 전통 민속 신앙과 현대적 회화 기법, 그리고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을 융합한 그의 작업은 지금도 많은 미술사학자와 작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최영림 화백의 예술세계 중 ‘초현실과 토속의 결합’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 조형 전략과 시대적 의미를 집중 분석합니다.
한국 현대미술
최영림의 작업은 민속적 이미지와 심리적 상징, 그리고 비현실적 공간 구성이 결합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소재는 무당, 탈, 전통 복식, 농촌 여성, 수호신과 같은 한국의 전통 신앙과 일상에서 파생된 시각 요소들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재현에 그치지 않고, 그 구도는 기묘할 정도로 왜곡되어 있고, 인물들은 비현실적인 표정과 포즈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서양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추구한 ‘무의식의 시각화’라는 목적과도 맞닿아 있지만, 그의 출발점은 분명하게 한국적인 정서입니다. 대표작 중 하나인 「무녀」 연작은 그의 상징적 언어가 극대화된 사례입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무속 인물들이 무표정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며, 그 배경은 붉은색과 검은색의 강렬한 삭면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인물들은 때로는 현실을 떠난 듯 붕 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주변에는 탈, 북, 촛불과 같은 주술적 소품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꿈같은 장면을 구성하면서도, 기묘하게도 익숙하고 낯선 한국의 정서를 자극합니다. 그가 그리는 무속은 단지 종교나 민속의 차원을 넘어서 집단 무의식의 상징화라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는 서양 초현실주의가 꿈, 무의식, 기억을 중심으로 심리학과 예술을 연결했다면, 최영림은 샤머니즘과 무속적 의례를 통해 한국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는 정신과 물질, 현재와 과거, 개인과 공동체가 하나의 시각 이미지로 겹쳐져 있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또한 그는 특정한 인물의 묘사보다는 상징적인 인물을 창조하는 데에 더 집중했습니다. 이것은 ‘개성 있는 인물화’가 아닌 ‘개인의 감정을 담은 집단적 이미지’를 만드는 전략으로, 그의 인물이 늘 정면을 응시하거나 감정이 없는 표정을 짓는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이 무표정 속에는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기억과 신화적 감성이 들어 있습니다.
민속 표현
최영림의 회화에서 색채는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 작품의 정서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요 수단입니다. 그는 전통 한국화나 민화에 쓰이던 담채의 색감보다는, 원색적이고 대담한 색을 사용했습니다. 특히 빨강, 파랑, 검정, 흰색 같은 강한 대비 색채는 작품에 강렬한 시각적 긴장감을 부여하면서도, 동시에 무속화나 굿판의 시각적 정서를 그대로 전달합니다. 예를 들어 <적무녀>라는 작품에서는 화면 전체가 붉은 톤으로 뒤덮여 있으며, 그 중심에 선 무당의 얼굴은 창백하고 무표정한 모습입니다. 이 대비는 관람자로 하여금 감정의 이입이 아니라, 감정의 정면 직면을 유도합니다. 초현실주의가 감정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실험이었다면, 최영림은 그 감정을 토속과 영성의 색채로 덧입힌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는 또한 화면의 질감을 통해도 의미를 전달했습니다. 전통 회화에서는 보기 어려운 두터운 마티에르, 종이를 찢어 붙이는 콜라주 기법, 물감을 덧바르고 긁어내는 테크닉 등은 모두 화면 자체에 이야기를 담기 위한 장치입니다. 특히 종이와 캔버스의 물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회화가 단지 보는 대상이 아니라 ‘느끼는 재료’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시도는 당시로서는 매우 실험적인 방식이었으며, 한국 회화가 단순히 소재에서의 전통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물성의 층위에서도 한국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한 점에서 높이 평가됩니다. 물성의 강조는 민속이 가지는 자연성과도 연결되며, 거칠고 투박한 질감은 세련됨보다는 진정성과 정서를 우선시하는 미학을 보여줍니다.
화가 최영림의 초현실주의
최영림의 회화는 단지 개인적 정서나 심리적 상태를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집단 심리, 즉 시대의 무의식적 혼란과 정체성의 위기를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특히 그는 6.25 전쟁 이후의 사회적 혼란, 산업화로 인한 전통의 붕괴, 그리고 근대화 속에서 잃어가는 정체성 문제를 상징적 이미지로 재해석했습니다. 그가 자주 그리는 무속인은 단순한 종교인이 아니라, 정신적 중개자로서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거나 해석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이것은 무속이 단순한 믿음을 넘어서, 한국적 집단의식 속에서 중요한 상징 구조로 작용하고 있음을 반영합니다. 이와 같은 접근은 단순히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민속적 실재를 예술로 번역하는 정치적·문화적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는 ‘공간’과 ‘시간’의 모호함이 자주 등장합니다. 전통 한옥과 현대 건물이 혼재하거나, 굿판 위에 전통 의상을 입은 인물이 서양식 창문을 배경으로 배치되기도 합니다. 이는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 신화와 현실이 혼재된 한국 사회의 혼란한 풍경을 시각적으로 압축한 표현입니다. 그의 회화는 말 그대로 ‘은유로 짜인 지도’입니다. 개별 요소들은 추상적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사회적 이야기 구조를 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의 회화는 단순한 회화 감상보다는, 비평적 시선과 역사적 맥락 안에서 읽어야 비로소 이해가 깊어집니다. 최영림은 한국의 정체성, 집단 무의식, 사회적 전환기를 한 화면에 담아낸 화가였습니다. 그는 단지 전통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전통을 해체하고 현대적으로 재조립하여, 한국 회화가 세계 미술사 속에서 독자적인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