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월룡(邊月龍, 1916–1990)은 한국 미술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화가입니다. 그는 평양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 그리고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유학하며 다국적 미술 교육을 받았고, 이후 북한에 정착해 주요 미술기관에서 활동했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국경과 이념을 넘나든 경계인의 궤적’이었기에, 변월룡의 작품에는 단순한 리얼리즘을 넘어서 시대와 정체성에 대한 복합적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변월룡의 예술세계를 ‘시선과 현실’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조망합니다.
냉전
변월룡의 대표 장르는 단연 ‘초상화’입니다. 그는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을 그렸으며, 특히 노동자, 농민, 전사, 여성, 예술가 등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담아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단순한 영웅화나 이상화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다소 침묵하고, 내성적이며, 고단함을 내포한 시선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인물 묘사는 당시 북한의 공식 미술계에서 흔히 요구되던 혁명적 리얼리즘과는 확연히 구분됩니다. 그는 인물을 체제의 상징으로 환원시키기보다는, 역사 속 개개인으로 남기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점은 그가 러시아에서 훈련받은 고전적 인물화 기법과,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항일 빨치산의 여전사』는 전투의 영웅을 묘사한 것이지만, 주인공 여성의 눈빛은 비장하기보다 고요하며, 주변과의 관계성 속에서 그 존재감이 드러납니다. 이는 전형적 선전미술과의 단절이자, ‘인간적인 리얼리즘’을 추구한 예로 읽을 수 있습니다. 변월룡의 초상화는 결국 ‘한 인간이 시대와 만나는 방식’을 시각화한 기록이며,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현실을 동시에 담아내는 회화적 문서이기도 합니다. 그는 그림을 통해 사람을 그렸고, 그 사람을 통해 시대를 은유했습니다. 오늘날 변월룡의 작품은 북한 미술의 한 사례를 넘어 '경계의 시선'이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미적 언어로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되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이념과 체계를 넘어 인간의 보편성과 개성을 탐구하는 조용하지만 강한 회화적 발언입니다.
북한 출신 화가 변월룡
변월룡은 일본 도쿄에서 미술 교육을 시작했으며, 이후 러시아 레닌그라드 미술아카데미에 유학하여 유럽 아카데미즘의 전통과 소비에트 리얼리즘의 양식을 체득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초기에는 유럽 회화의 정밀한 구도와 명암법이 반영된 초상화, 풍경화가 중심이었고, 귀국 이후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한 역사화, 인물화, 노동자상 등을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정치선전용 미술과는 구별되는 정서적 깊이와 시선이 그의 작업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프로파간다로서의 리얼리즘이 아닌, 인간 내면과 현실의 충돌을 포착하는 미술을 추구했습니다. 특히 주변부 인물이나 서민층의 표정을 포착하는 데 탁월했으며, 이는 그가 단지 체제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밖에서 안을 본 자’, 즉 이방인의 시선으로 현실을 그렸다는 점에서 설명됩니다.
그의 조형 언어는 한편으로는 극사실적 묘사에 기반하면서도, 인물과 배경 사이의 거리감, 색감의 절제, 구도의 정적 긴장을 통해 내면적 고요와 긴장감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이는 레닌그라드 학파의 영향과 더불어,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사유가 조형적으로 융합된 결과입니다. 변월룡은 단순히 '북한 화가'나 '소련 유학자'로 분류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다면적인 삶과 예술 세계를 가진 인물입니다. 그의 그림은 사실주의의 공통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관점과 태도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는 체제를 추구하지도 않았고, 노골적인 비판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림을 통해 "인간을 보고 시대를 기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경계인'의 정체성
변월룡의 회화는 명확히 정치적인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회화는 명확하게 ‘정치적 현실의 반영’입니다. 그는 북한이라는 폐쇄된 체제 안에서 활동했지만, 그의 시선은 항상 국경과 이념을 넘어서 있었습니다. 이는 작가의 생애 자체가 경계에 놓인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변월룡은 남북 분단 이전에 태어나 일본에서 식민교육을 받았고, 이후 소련에서 유학하며 국제공산주의 체제의 미술 이데올로기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귀결로서 북한에 정착해 평양미술대학 교수로 활동하며 수많은 작가들을 길러냈습니다. 그의 삶은 바로 ‘이념 사이의 사람’이었고, 이는 그의 회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드러납니다. 이념적으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형식을 따르면서도, 그는 그 안에 민족의 정체성과 개인의 주체성을 담아내려 했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선전회화와는 다른 미묘한 균열로 작용하며, 그로 인해 변월룡의 작업은 오늘날 남북을 아우르는 미술사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구도, 색채, 인물 간 거리감 등은 모두 ‘거리두기 된 현실 인식’의 반영이며, 감정이 폭발하지 않는 절제의 미학은 북한 미술 안에서도 이례적인 조형감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지 않지만, 그가 남긴 그림은 여전히 우리에게 "나는 어디를 보고 있었나요?" 그리고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요?"라고 말할 것입니다.